2013년 배터리 셀 기술 원조 소니에 하이니켈계 양극소재 첫 공급소니의 배터리 사업 인수한 무라타와도 인연 지속, 까다로운 일본 품질기준 만족
에코프로와 소니에서 무라타제작소로 이어지는 일본 배터리 셀 업체와의 파트너십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에코프로는 2013년 8월, 일본 소니에 처음으로 하이니켈계 양극소재를 납품했으며 2017년 무라타가 소니의 배터리 셀 사업을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10년 동안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배터리 소부장 업체 가운데 일본에 소재를 공급한 것은 당시 에코프로가 최초로, 협력 관계가 10년 이상 지속되는 것이 흔치 않은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소니는 1993년 리튬이온 배터리를 최초로 상용화한 회사로, 세계적인 셀 메이커라는 점에서 당시 한국의 중소기업이 소니에 첨단 배터리 소재를 공급했다는 사실은 소재 부품업계에서는 유례없는 일이었다.
◇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맺은 에코프로-소니 파트너십
에코프로는 2009년 에코프로 상장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배터리 소재 라인을 증설한다. 에코프로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경쟁사는 에코프로를 견제하기 위해 치킨게임을 시작했다. 에코프로는 당시 kg당 6~7달러에 전구체를 공급하고 있었는데 경쟁사는 3달러 후반대로 가격을 낮췄다. 라인을 돌리면 돌릴수록 적자가 늘어나자 에코프로는 몇 개월이 지난 뒤 공급을 포기하고 결국 사업 철수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했다.
에코프로는 전구체 사업에 대해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한편, 하이니켈계 양극소재(NCA)로 사업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선택과 집중이었다. 돌이켜 보면 경쟁사의 가격 후려치기는 에코프로가 전구체 사업에서 최첨단 하이니켈 양극재 사업으로 턴어라운드하는 계기였다.
이동채 전 에코프로 회장은 당시 임원들과 대책 회의에서 “증자와 은행 대출을 통해 수백억 원을 들여 전구체 라인을 증설했는데 매출의 절반 이상이 날아가게 됐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죽는다. 세계에서 배터리 셀을 가장 잘 만드는 소니를 뚫자”고 임원들을 독려했다. 영업을 비롯한 연구개발 등 전 부서 직원들은 사즉생(死即生)의 각오로 나섰다.
그리고 에코프로는 2010년 처음으로 일본의 대표 배터리 전시회인 ‘배터리 저팬’ 행사에 참석해 소니 부스 바로 옆에 전시관을 마련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 이름도 생소한 중소기업에 소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에코프로는 2011년에도 ‘배터리 저팬’에 참석해 부스를 마련했고 소니 측에 방문해 한 번만이라도 테스트를 해달라고 절실하게 요청했다. 에코프로 관계자들은 2011년 전시회를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 표를 막 끊고 귀국하려던 차, 소니의 연락을 받는다. 후쿠시마현 소니 본사를 방문해 달라는 소니 쓰게마 사업본부장의 메시지였다. 에코프로 개발 및 영업팀은 소니 본사를 방문해 에코프로 양극소재 기술력을 설명했지만, 소니 측이 요구하는 품질 수준과는 차이가 있었다.
최문호 에코프로비엠 대표는 소니 측에서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양극소재를 개발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 이차전지의 원조, 소니의 문턱을 넘다
소니는 2012년 가을 자사의 품질 담당 인력을 중심으로 TF를 구성해 에코프로 충북 오창공장으로 급파했다.
소니의 TF는 약 한 달간 에코프로의 오창공장에 머물며 품질 지도에 착수했다. 에코프로가 소니의 품질 과외를 받은 것이다. 에코프로는 공장의 정리 정돈부터 청결을 통해 현장의 이물질이 배터리 소재 공정에 들어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한 달여 만에 소니 TF는 에코프로 하이니켈 양극재 품질이 일정 수준 올라왔다고 판단, 시제품을 일본 소니 셀라인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에코프로는 2013년 8월, 5톤의 배터리 양극소재를 소니에 시험 공급한다.
2015년 3월 에코프로는 소니와 장기공급 계약을 체결한다. 시험 공급을 통해 에코프로의 품질 수준이 업그레이드되는 것을 지켜본 소니가 ‘에코프로의 기술력’을 인정한 것이다. 소니가 자국 기업이 아닌 한국 기업에 문을 연 것은 당시로는 이례적인 조치였다. 소니에 시험 공급하는 과정에서 품질 문제가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은 것을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2012년 라인 증설을 통해 배터리 소재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 했지만 경쟁사의 가격 후려치기로 사업을 접어야 하는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것이다.
에코프로의 소니 양극소재 공급은 당시 배터리 소부장 업체가 일본에 수출한 것은 최초인데다, 한국의 소부장 기업들도 품질 수준만 높이면 일본시장을 뚫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에코프로 기술력이 일본 내 선진 소재업체들과 견줘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면서 국내외 배터리 셀 업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015년 에코프로는 오창에 제3공장을 준공하면서 연간 4300톤의 생산 캐파(CAPA)를 구축한다. 2014년 하이니켈 양극소재 판매량이 1100톤에서 15년에는 2000톤으로 두 배가량 증가하면서 그해 창사 이래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다. NCA 양극소재 1위 기업인 스미토모에 이어 세계 2위의 위상을 확보하면서 하이니켈 양극소재 기술을 선도하게 된다. 지금은 에코프로 하이니켈 양극재 판매량이 세계 1위에 올라섰다.
◇ 소니에서 무라타로, 무라타에서 세계로
이후 2017년 소니는 배터리 사업부를 무라타제작소(이하 무라타)에 매각한다. 무라타는 일본의 전자기기 전문회사로,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다층 세라믹 커패시터(MLCC)’ 분야에서 세계 최고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에코프로는 무라타에 전동공구, 무선청소기, 전동자전거 등 비IT 분야 배터리용 NCA 양극재를 공급하고 있으며, 소니와 첫 거래를 시작했던 2013년 6톤에서 시작해 현재 연간 수천 톤을 무라타에 공급하며 거래량을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다.
기술소재 강국인 일본의 소니, 현 무라타와의 거래를 통해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만족시키며 기술력을 업그레이드한 에코프로는 이제 고품질의 하이니켈 양극재를 삼성SDI, SK온 등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셀 제조 기업들에 공급하면서 한국 배터리 셀 생태계의 주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에코프로 마케팅실 양제헌 이사는 “무라타는 에코프로 배터리 양극소재에 대해 품질을 보증하는 등 두터운 신뢰관계를 맺고 있다”며 “고품질의 양극재 공급을 통해 10년 우정의 무라타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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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