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이 시작되기 전인 1800년대 스톤헨지는 매우 다르게 보였습니다.
스톤헨지는 영국 윌트셔에 위치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사 시대 기념물입니다. 이 놀라운 구조물은 각각 높이 약 4.0m, 너비 2.1m, 무게가 최대 25톤에 달하는 거대한 사르센 입석의 원형 배열로 구성되어 있으며, 토공사 내에 설치되고 도랑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스톤헨지는 기원전 3100년에서 1600년 사이에 여러 단계로 건설된 것으로 여겨지며 그 목적과 중요성은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기념물은 뛰어난 공학 기술이자 고대 독창성의 상징적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천체 현상과 일치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특정 돌은 하지 동안 일출 위치를 표시합니다. 신비로운 분위기와 웅장한 돌기둥이 주는 경외감에 이끌려 해마다 수많은 방문객이 찾는 곳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방문객들은 고대 기념물의 복원이 시작되기 전인 1800년대 스톤헨지의 모습이 얼마나 달랐는지 알면 놀랄 것입니다. 1820년대 중반에서 1915년 사이에 안트로버스 가문이 이곳을 소유했으며, 4명의 연속 소유주는 모두 에드먼드 경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3대 에드먼드 경이 소유권을 가졌던 30년 동안(1870~1899), 기울어지고 떨어진 돌의 양은 최고점에 도달했습니다. 에드먼드 경은 사이트에 대한 무제한 입장을 옹호했지만 스톤헨지를 복원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더 안전하게 만드는 개념에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1899년 세 번째 에드먼드 경이 사망한 후 태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네 번째 에드먼드 경은 1900년 12월 31일에 사르센석 22와 그에 수반되는 상인방이 무너진 후 Society of Antiquaries와 Wiltshire Archaeological Society에서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돌 56을 수직 위치로 복원하자는 제안은 기념비에 대한 낭만주의적 해석을 상징하는 Constable과 Turner의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전국적인 담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에드먼드 경은 결심했고 1901년 8월과 9월 두 달에 걸쳐 돌 56의 곧게 펴기를 수행하여 1901년, 1920년, 1958년, 1963년에 최고조에 달한 일련의 복원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돌과 외부 도랑을 굴착하고 사르센 서클 외부에 Y 및 Z 구멍이라고 하는 동심 원형 구멍이 위치했습니다.
또 다른 주요 복원 작업은 1958년에 이루어졌으며, 그 동안 세 개의 서 있는 사르센이 다시 세워져 콘크리트 기초에 고정되었습니다. 마지막 복원은 사르센 서클의 23번째 돌이 무너진 후인 1963년에 수행되었습니다. 성공적으로 복원되었고, 이를 계기로 3개의 추가 돌을 콘크리트로 활용하여 안정성을 더욱 확보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개입의 결과로 스톤헨지의 전체적인 모습은 심오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사실 이 기념물은 청동기 시대 이후 어느 때보다 20세기에 더 많이 변했습니다. 비록 입석이 60년대 이후로 변경되지는 않았지만 그 주변 지역은 고고학자들에게 표적 발굴 및 현장 조사를 위한 많은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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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