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1520년에 버려진 페트병이 있다면 아마 작년 무렵 분해됐을 것이다. 500년, 1개의 페트병이 자연 분해되는 시간이다. 201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연간 폐플라스틱 배출량은 690만 톤으로 많은 양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으며,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배달 음식, 온라인 쇼핑 등이 증가하면서 폐플라스틱 사용량도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폐플라스틱 사용량의 증가는 동시에 환경문제의 심각성으로 이어져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어 전세계 관심사로 떠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위기 상황 등으로 소비자들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더욱 늘어나면서 친환경 소비에도 동참하고 있다. 또한 사용된 생활용 폐플라스틱은 다시 원료로 재사용되고, 그 중 폐페트(PET)병을 이용한 리사이클 제품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국내에서도 자원 순환 촉진과 국제적 추세에 따라 플라스틱 재활용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식약처와 환경부는 식품용으로 사용된 투명 페트병을 재활용해 식품용기로 만들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이르면 내년 1월부터 환경부의 ‘식품용 투명 페트병 분리·수거사업’을 통해 모은 플라스틱 중 식약처가 정한 안전 기준에 적합한 리사이클 원료는 식품용기로 제조할 수 있게 된다.
패션 분야도 리사이클 사업의 영역이 다양해졌다. BYN블랙야크, SM티케이케미칼, 플리츠마마, 코오롱에프앤씨 등 주요 브랜드에서 폐페트병의 재사용을 통한 리사이클 제품 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인 아디다스, 나이키 등에서도 리사이클 원사(실)를 사용한 제품 생산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정책브리핑은 투명 페트병이 용기형, 의류, 가방 등의 제품으로 어떻게 재탄생되는지 SM티케이케미칼과 BYN블랙야크 관계자를 만나 자세히 알아봤다.
변화를 위한 첫 걸음, 분리 잘해야 고품질 원료로
SM티케이케미칼과 BYN블랙야크는 국내 자원재생기업들과 손을 잡고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가공해 섬유를 만들어 상품을 제작하고 있다. 특히 100% 국내에서 발생하는 폐플라스틱을 모아 ‘플레이크’를 만들고 이 플레이크를 ‘페트칩’으로, 다시 ‘원사’로 만들어 원단 공장과 염색 공장을 거쳐 다시 소비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탄생시킨다. 1장의 티셔츠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약 15개의 페트병(생수병 500ml 기준)이 재활용된다.
먼저 SM티케이케미칼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페트칩과 폴리에스터 원사를 동시에 생산하는 기업이다. ‘페트칩(PET chip)’은 원사나 용기 등을 만드는데 쓰이는 원재료를 말한다. 리사이클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기업은 많지만, 페트칩을 만드는 기업은 국내에 단 2곳. SM티케이케미칼은 그 중 한 곳이다. 2019년까지만 해도 리사이클 페트칩을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해 일본, 중국 등에서 수입해왔었다.
깨끗하고 철저한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은 재활용 폴리에스터 원사를 만드는 공정의 성패를 좌우하는 첫 걸음이다. 오정택 SM티케이케미칼 부장은 “투명한 페트병끼리만 모여야만 의류용 원사로 재활용 할 수 있다”며 “오염된 페트병이 투명 페트병과 섞여서 배출되면 깨끗한 페트병 조차도 쓸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투명 페트병은 오염도에 따라 크게 저급, 중급, 고급으로 나뉘어 원사로 만들어지며 의류용 원사는 고급 원사 중 최상급의 것들로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한국산 페트병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에서 작년 12월부터 공동주택을 시작으로 시행한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의무화’를 개개인이 잘 동참해줘야 한다.
페트 재활용의 시작 ‘페트 플레이크’ 어떻게 만들까
페트 리사이클 제품의 원재료인 ‘리사이클 페트칩’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소비자로부터 버린 페트병→모아 압축시킨 ‘페트 베일(압축상태의 뭉치)’→분쇄·세척한 ‘플레이크’→플레이크를 녹여서 만든 ‘리사이클 페트칩(PET R-CHIP)’ 등의 순서다.
우선 ‘페트 플레이크’를 만드는 과정에서 품질 등급에 따라 원사와 용기로 나눠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정회욱 BYN블랙야크 대리는 “깨끗하게 분리 배출된 페트병을 잘게 파쇄하고, 비중을 분리해주는 물에 담그면 순도 높은 페트는 가라앉고 방해가 되는 이물질은 위로 떠오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비중분리와 세척과정을 거치고 나면, 우리가 기다리던 순도 높은 재활용 페트가 등장하게 된다. 그것도 한국의 페트병을 재활용한 한국산 페트(K-rPET) 플레이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페트 플레이크의 등급을 A, B, C로 나누면 고품질인 A등급은 의류·가방·화장품병 등을 만드는 장섬유 또는 시트(SHEET)를 뽑아내 제품을 만들 수 있으며, B·C등급은 솜이나 면 등에 쓰이는 단섬유 제조용으로 생산할 수 있다. 페트 플레이크가 만들어지면 리사이클 제품의 원재료인 ‘리사이클 페트칩’ 생산 단계로 넘어간다.
의류·용기(Bottle)로 재탄생 준비 ‘리사이클 페트칩’
플라스틱 리사이클 원재료는 ‘펠렛(Pellet)’ 또는 쌀알 만한 모양의 작은 ‘리사이클 페트칩’ 두 가지다. SM티케이케미칼에서 생산하는 것은 ‘리사이클 페트칩’이다. ‘페트 플레이크’가 여러 공정을 거쳐 ‘칩’의 형태로 변하고, 고품질의 장섬유인 ‘의류용 원사’로 재탄생 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 장섬유는 플레이크를 머리카락 굵기의 200분의 1(데니아) 상태로 10km까지 뽑아낼 수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만약 불순물이 섞이면 중간에 끊어져 의류용 원사로 쓸 수 없다.
한국산 페트칩 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재활용 페트칩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한국산 페트를 고품질의 원료로 바꾸는 일도 중요하다. 오정택 부장은 “과거에는 품질에 따라 일본과 중국에서 주로 수입을 했지만, 이제 국내에서 리사이클 페트칩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유럽과 같이 리사이클 페트칩이 모자라는 국가에 수출해 리사이클 페트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초 한국산 페트, 의류 시장화…용기형 미래 시장화
BYN블랙야크는 지난 2019년 연구개발(R&D)을 본격화해 지난해 7월말 최초로 순수 국내산 100%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고품질 원사를 생산해 기능성 의류를 만들어 시장화했다. 지난해 SM티케이케미칼과 손잡고 국내 페트병만 활용해 의류 제품을 출시했다.
또한 기술성, 혁신성, 지속가능성을 추구해 제품의 목적에 따라 원사의 구조를 다양하게 만들어 더 가볍고 시원하며, 포근하게 기능성을 부여했다. BYN블랙야크는 페트병을 재활용, 야외활동복 기능까지 갖춘 완전한 패션 상품을 개발해 상용화·시장화에 성공해 지난 2일 ‘6월의 한국판뉴딜’ 그린뉴딜 분야 모범 사례로 선정됐다.
정회욱 대리는 “원사를 만들 때부터 색을 입혀 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멋진 컬러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서 “초기에는 티셔츠 소재만 만들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자켓, 바지, 충전용 솜 등 다양하게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투명 페트병을 활용하여 병을 제작하는 용기형(B to B) 시장은 해외 사례의 경우 빠르게 가속화 되고 있다. 오 부장은 “유럽에서는 오는 2025년까지 25%, 2030년까지 30%를 권고하고 있으며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캘리포니아의 경우 2025년까지 30%를 사용하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사이클 제품, 품질 믿고 구매해도 될까
BYN블랙야크 본사 매장에 걸려 있는 일반 티셔츠(A)와 리사이클 티셔츠(B). 유관상 구별할 수 있을까? 눈으로 봤을 때 어떤 옷이 리사이클 제품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정회욱 대리는 “연구·개발을 꾸준히 한 결과, 색상도 원하는 색상으로 뽑을 수 있고, 아웃도어 브랜드이다 보니 단순히 재활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성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디자인만 신경 쓴 것이 아니라, 소재가 피부에 안전한 지 그리고 시원한 지를 살핀 것이다. 일반 티셔츠(A)가 폴리에스터와 스판 성분이 들어갔다면, 리사이클 티셔츠(B)는 옥수수 폴리에스터, 인견, 투명 페트 성분이 혼합돼 들어가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정 대리는 “한 개의 티셔츠를 만들기 위해 총 2번의 품질 테스트를 거친다”며 “원자재 단계에서 테스트를 하고, 완성품 단계에서 다시 테스트를 하기 때문에 인체에 해롭기보다 오히려 향균 기능과 같은 기능성을 추가해 성분면에서 우수하고 안전성도 높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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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