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카들이 모이는 50년대 분위기의 핫스폿, Triple XXX Root Beer Drive-in
클래식카들이 모이는 50년대 분위기의 핫스폿
Triple XXX Root Beer Drive-in
한국에선 아직 낯선 클래식카 문화가 있다. 바로 지역 단위로 형성된 클래식 오토쇼이다. 오토쇼라는 단어가 거창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주말에 모이는 소박한 모임이다. 시대별 다양한 차들이 지역 별로 모이는 카스 앤 커피(Cars and Coffee)가 좋은 예. 이런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클래식카 마니아가 즐겁게 주말을 보내는 한 방법이다.
락앤롤 팬들에게 특별한 차도 만나볼 수 있었다. 비틀즈, 롤링 스톤즈, 에릭 크랩튼, 엘튼 존 등 상당히 많은 가수에게 영향을 주었던 50년대 인기 가수 버디 홀리(Buddy Holly) 밴드의 미국 횡단 투어버스다. 새롭게 단장하여 복원하는 것보단 오리지널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의미가 있어 소장중이라고
미국은 자동차 역사가 길고 클래식카 잔존 개체 수가 많은 편이라 자동차에 큰 관심이 없는 일반인도 비교적 다양한 오토쇼를 접하며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를 즐기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남녀노소 구분 없이 주말에 가족, 친구들과 즐기는 커뮤니티 성격 강한 소규모 오토쇼가 지역별로 많이 열린다. 겨울을 제외하고 시즌별로 자동차의 스타일, 브랜드 등에 따른 여러 카테고리를 한 번에 볼 수 있으며, 컬렉터부터 일반인들까지 참여 가능한 모임이 주를 이룬다.
작은 입구를 통과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50~60년대 소품으로 가득 찬 실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필자가 사는 시애틀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에 소개할 곳은 시애틀 인근에서 자동차 마니아들이 자주 모이는 대표적인 장소다. 시애틀 클래식카 마니아들에게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는 이곳은 50년대 미국 분위기 물씬 풍기는 햄버거 가게. 자동차 마니아 외에도 당시 시대상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만나 문화와 향수, 추억을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다. 물론 정보를 교환하거나 클래식카 유지관리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하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빈티지 테마로 가득한 지역 클래식카 마니아들의 성지이자 시애틀의 위성도시인 이사콰시에 위치한 1950년대 스타일 햄버거 핫 스폿, 트리플 엑스 루트비어 드라이브인(Triple XXX Root Beer Drive-in, 이하 트리플 엑스)에 다녀왔다.
이곳의 대표 음료인 루트비어 플롯. 냉동고에 넣어둔 차가운 피처에 루트비어를 따르고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얹은 모습은 미국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미국 자동차 문화를 대변하는 드라이브인
‘트리플 엑스 루트비어 드라이브인’ 이라는 상호에 먼저 호기심이 든다. 이곳은 1930년대 시작되어 1960년까지 미국에서 유행했던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점으로 이곳에서 만든 루트비어가 유명해지면서 한때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에 단 두 곳만이 남아 운영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루트비어란 북미 지역에서 즐기는 탄산음료로 ‛비어(beer)’라는 이름 때문에 맥주로 착각할 수 있으나 알코올이 없는 탄산음료의 일종이다.
이곳에 전시된 소품들은 모두 당시 사용되었던 오리지널들이 라고 한다. 실제 사용되었던 자판기와 각종 간판, 정비소에서 사용됐을 법한 물건들이 골동품 상점에 온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소품 전시에는 한 가지 룰이 있는데, 모조품이나 오래되어 보이도록 만든 물건은 금지라고
트리플 엑스 프렌차이즈는 없어졌지만 이곳은 현재 넓은 주차장을 활용해 지역 클래식카 마니아의 성지로 거듭났다. 대부분 시설은 트리플 엑스가 호황기였던 1950년대에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 이곳은 작은(?) 크기의 식당이지만 멀리서도 보이는 큰 간판이 인상적인데,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풍요로웠던 미국의 50년대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소품과 자동차 부품들로 가득하다. 한때는 누군가에게 아주 유용한 것들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소품이다. 이런 소품들은 모조품이 아닌 실제라고 하며 당시 시대상은 물론 자동차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자동차 관련 메모라빌리아(memorabilia-과거를 회상해 향수를 느끼게 만드는 물건)로 가득하다. 이들 상당수는 손님들이 직접 기증한 것이라 더욱 소중하다. 긴 역사가 있다 보니 단골손님은 물론 옛 기억을 회상하고 나누려는 지역 커뮤니티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생각보다 작은 문에 놀라게 된다. 창문을 뒤덮은 자동차 동호회와 이벤트 스티커가 이곳이 클래식 자동차 마니아의 성지임을 입증하는 듯하다
이곳의 컨셉트는 주인의 성향을 반영한 것이지만 클래식카와 레트로 다이너 컨셉트를 적절히 배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자동차 문화 성장에서 50년대는 의미가 크다.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은 이때부터 새로운 기술 발달을 토대로 탄탄한 경제력을 다지기 시작해 교외의 단독주택과 고속도로가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기본적인 구조는 50년대와 바뀐 게 없고 클래식카 관련된 소품과 노스탤지어를 느낄 수 있는 물건들로 꾸며져 있다. 의도적으로 꾸몄다기 보단 시간이 흐르면서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풍경. 마치 타임캡슐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은 필자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필자가 주문한 햄버거와 루트비어. 요즘 입맛엔 다소 기름지지만 수제 버거 답게 훌륭한 맛을 자랑했다
50년대의 풍요로움 담은 수제 햄버거
트리플 엑스가 햄버거로 유명한 식당인 만큼 햄버거를 맛보는 것은 당연히 필수 코스다. 거기다 이곳만의 독특한 음료인 루트비어를 함께 맛보는 것이 국룰이라니 필자도 종업원의 추천에 따라 햄버거와 루트비어를 주문했다. 메뉴를 보니 특이하게도 친근한 클래식카 이름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과연 1950년대의 햄버거는 어떨지 궁금했다. 간판은 패스트푸드지만 실물은 수제 햄버거에 가깝다. 넓적하고 두툼한 빵에 버터를 발라 기름져 보이는 대신 풍미를 더했다. 직접 만든 소고기 패티와 하우스 소스, 아메리칸 치즈 위에 방금 구운 베이컨을 올려 몇 입만 먹어도 배부를 듯한 푸짐한 크기였다. 곁들어진 감자튀김은 생감자를 바로 잘라 튀겨 감자 특유의 향이 살아있고 바삭거리는 식감이 강렬하다. 함께 주문한 루트비어는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맛이었는데, 쌉쌀한 맛이 강하고 독특했다.
클래식카 컬렉터이기도 한 호세 엔시소(Jose Enciso). 빈티지 문화는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닌 다음 세대가 이어가고 즐길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라고 말하는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가게를 유지하면서 클래식카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 소신이자 의무라고 밝혔다
1950년대 분위기에 심취해 식사를 마친 후 때마침 이곳의 대표인 호세 엔시소(Jose Enciso)를 만날 수 있었다. 멕시코계 이민자 2세인 그는 클래식카 컬렉터로도 알려진 자동차 마니아.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주방에서 일하는 열정적인 오너다. 그는 지역 클래식카 모임이라면 언제든지 식당 주차장을 무료로 개방해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이지역의 클래식카 애호가에게는 대부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호세를 처음 만나 그동안 달라진 점이나 성공적인 햄버거 핫스폿의 노하우와 비결 그리고 클래식카에 대한 열정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50년대 스타일을 유지한 트리플 엑스 루트비어 가게 전경. 오래된 건물 그대로 이전의 색상과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지역 클래식카 동호회 모임과 자동차 관련 이벤트가 열리는, 인근 자동차 마니아에게 핫스폿으로 알려져 있다
Q1
미국에는 다양한 로컬 햄버거 가게가 있지만 트리플 엑스만의 경쟁력과 성공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트리플 엑스를 인수할 당시 브랜드 인지도가 거의 없는 사라진 체인이나 다름없었다. 간혹 예전 루트비어의 인기 때문에 음료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도 식당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메뉴 또한 그저 그런 평범한 음식을 파는 식당에 가까웠다. 그래서 1950년대 느낌의 햄버거와 클래식카의 만남이라는 컨셉트가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여러 자동차 전문방송과 여행매체에 등장한 유명 맛집이라 그런지 그 흔적들도 볼 수 있었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옛날 네온사인이나 자판기, 주크박스 등을 같이 전시해 옛 자동차 문화와 당시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이미 트리플 엑스는 없어진 브랜드였지만 브랜드를 기념하고 풍요롭던 시절인 1950년대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게 한 것이 지금의 성공을 이룬 거 같다. 클래식카를 좋아하고 즐기는 마니아이기 때문에 지역의 여러 클래식카 클럽 및 행사를 유치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명해진 것 같다. 물론 햄버거가 맛있어 알려진 것은 당연할 것이다.(웃음)
이곳에서 가장 크다는 트리플 엑스(가장 큰 사이즈라는 뜻) 버거. 냄비 뚜껑만 한 수퍼 사이즈 버거다. 한 사람이 주문해 정해진 시간에 모두 먹는다면 공짜라고. 대식가라면 한번 도전해 보자!
Q2
한때 많은 클래식카를 소유했었고 클래식카 관련 소장품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골동품과 클래식카의 매력은 무엇이고 왜 이런 취미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멕시코 이민자 2세로 텍사스에서 태어나 시애틀에 정착하기 전까지 캘리포니아에서 생활했다. 아버지는 목화밭에서 일하는 노동자였지만 농장 관리를 했기에 나는 다양한 기계와 자동차를 손질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왔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큰 창고나 헛간을 볼 수 있지만 당시 그런 공간이 나의 놀이터였고 자연스럽게 오래된 자동차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옛날엔 지금처럼 자동차로 이동이 쉽지 않았고 시골에 살면 관리와 유지정비는 필수라고 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자가 정비를 하면서 스스로 고치고 관리한 자동차에 대한 애착과 믿음이 클래식카를 좋아하게 된 이유인 것 같다.
아날로그 감성 물씬 풍기는 주크박스 시스템. 각 테이블 마다 동전을 넣고 원하는 음악의 번호를 입력하면 로비에 있는 메인 플레이어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곳의 주인 호세씨에 따르면 각 테이블마다 있는 주크박스 시스템을 복원 하는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들었다고 한다
신차를 사면 무슨 재미로 자동차를 운전하겠는가? 자동차는 탈 것이지만 구조를 이해하고 직접 유지, 관리한다면 재미는 배가 된다. 클래식카와 골동품의 매력이라면 다시는 신품으로 접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내가 성장하면서 한번쯤은 가지고 싶었거나 그 당시 소유하지 못한 것을 이제 여유가 생겨 소유하고자 하는 대리만족의 의미도 크다. 나는 이제 나이가 꽤 들었다. 지금까지 소장해온 클래식카와 골동품들을 조금씩 정리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내가 즐기며 만족하던 물건들을 다음 세대가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평생 소유라는 것은 없다고 본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매주 지역 클래식카 오토쇼가 열리곤 했지만 지금은 주차장에서 모여 드라이빙을 떠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코로나 이전 모습으로 돌아가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즐기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 요즘 호세씨의 바람이다. 사진은 지난해의 모습
Q3
코로나 사태 이후 요식업 피해가 크다. 대부분의 자동차 모임이나 이벤트가 취소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많은 소상공인이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내 영업장 또한 어느 정도 타격이 있다. 팬데믹 이전에는 매 주말마다 여러 자동차 클럽의 이벤트를 유치하면서 부가적 이익이 있었다. 현재는 사람들이 모이지 못해 예전같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살짝 사그라졌다. 하지만 가게 앞에 모였다가 드라이빙을 떠나는 식으로 바뀌었다. 내 가게는 클래식카와 1950년대 햄버거 가게라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를 통해 성장했다. 지금 사태가 조만간 안정되어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손님 또한 식당 안에서 먹는 것보단 테이크아웃으로 가져가는 비율이 높아졌다. 나는 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하면서 지금 같은 불확실성의 상황을 겪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가게 앞에 여러 사람이 모여 클래식카를 보며 즐거움을 나누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아쉽다. 그것이 내가 가게에서 일하는 즐거움이자 의욕의 원천이었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50년대 미국 스타일 햄버거, 나이가 많은 미국인들이 옛 맛을 찾아 인기가 많다한다
Q4
이번 취재는 한국의 자동차 잡지에 기고될 것이다. 한국의 자동차 팬들과 구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먼저 다른 나라의 자동차 잡지에 내 가게의 사진과 기사가 나간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하고 신기하다. 나는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이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귀중한 매개체라 생각한다. 자동차 취미는 혼자 즐기기보다는 여럿이 즐기면 재미와 의미가 배가된다. 한국의 자동차 마니아 여러분도 잠깐의 흥미보단 오랜 기간 여럿이 즐길 수 있는 취미로 만들어나가면 좋겠다. 미국 시애틀을 방문한다면 꼭 트리플 엑스 루트비어 드라이브 인을 방문해 주기 바란다. 서비스로 시원한 루트비어는 기본으로 제공하겠다!
Text by
Samuel Chang
현재 시애틀에 거주 중인 클래식카 마니아.
워싱턴 주립대학과 프렛 인스티튜드를 거쳐 혼다 미국 법인 R&D 센터에서 디자인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9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다양한 차종을 소유하고 있으며 클래식카 리스토어 스페셜리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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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열 기자 다른기사보기